1995/9 클레식 피플
분장은 화장이 아닙니다!
비극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의 얼굴에 붙어있던 수염이 갑자기 떨어질 때가 있다.
술집 접대부냐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무대의 막이 오르기 직전에야 어슬렁 거리며 나타나는 주연들을 일사천리로 분장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장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진하게 화장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분장은 엄연한 예술이다.
화장은 보다 아름다워지려고 시작한 여성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분장은 화장의 차원을 벗어난 고도의 기술과 지식을 요하는 작업이다.
분장이란, 무대의 출연자가 극중 인물을 표현하기 위하여 화장을 하고 의상, 가발, 모자, 신발 등을 착용하는 일이다. 대사나 연기를 하기 전에 관객의 시각을 통해 그 역할의 시대, 지역, 연령, 지위, 성격 등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극적 요소이다. 그러나 요즘은 의상과 소품, 분장이 분리되어 오페라의 경우 분장 디자이너는 출연자의 머리와 얼굴만을 표현해 준다.
오페라의 분장은 단순히 화장이 아닌 무대 분장이다.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의 자리 때문에 관객과의 거리가 더욱 먼 무대이다. 따라서 ‘진한 화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오페라가 아닌 외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많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 거기에다 작품에 따라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의 출연자가 오르내린다. 따라서 이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분장 디자이너가 없다면 오페라를 볼때 주인공의 얼굴은 밋밋한 달걀귀신처럼 보일 것이다.
오페라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명의 분장 디자이너 아래 ,출연자들의 수에 따라 분장팀30~50명이 대동된다.
분장 디자이너는 작품을 약 2달전에 의뢰받는다. 다음은 작품분석을 위해 자료 및 비디오를 통한 시대적 고증과 각각의 인물에 맞는 이미지를 디자인 한다. 분장팀 내에서 전체 이미지를 디자인 한다. 분장팀 내에서 전체 이미지를 맞추기 위해 회의를 거쳐 실습을 한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작품이라도 공연장소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의상과 조명에 따른 변화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스텝회의는 더욱 중요하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죠. 여자 주역급 중의 한사람이 정성들여 다한 분장을 뒤에가서 자꾸 다시 닦고 오는 거예요. 마음에 안드는지 다시 해달라면서. 그래서 나중엔 화가 나서 그만두라고 큰소리 친 적이 있는데 막이 오르기 직전에 연출가의 눈에 띄어 혼이 나더니 그제야 울며 불며 난리더군요. 대학생들 무대는 어떤지 아세요? 어떤교수는 직접와서 학생들 분장이 진하다며 약하게 해달라고 강요하기도 해요. 술대접부 같다나요? 그당시 저도 대학 연극 영화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기에 대등한 교수로서 담판을 지었습니다. 가까이 보면 과장되게 보이지만, 무대에 오르고 조명을 받으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분장입니다.” 오페라 분장만 40년, 방송국 분장 30년을 바쳐온 전예출씨. 이탈리아 연출자들도 프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의 분장을 제대로 자리잡게 한 개척자 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따진다면 예술장르에 따라 무대분장에도 따진다면 예술장르에 따라 무대분장에도 차이가 난다. 고전 무용은 가는 눈썹, 동그란 우리 얼굴에 맞는 이미지를 살린다. 발레의 경우 환상적인 분위기를 살려야 하는데 고전 발레와 현대발레에도 다른 맛을 내 주어야 한다. 이에 비해 연극은 조금 솔직하고 투박한 느낌이 없지 않다. 오페라 분장은 다른 무대 예술에 비해 지적이며 밝은 계열의 색을 사용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동화속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살려야 하고 이집트가 배경인 베르디의 <아이다>는 생활양식 즉, 제사시와 평상시, 그리고 신분차이에 따른 눈화장이 각각 틀리다.
최근 무대 예술, 영화, TV, CF 등에서 수요가 늘어나 분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 지면서 많은 이들의 선호 직종이 되었다. 그러나 분장을 하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기본적으로, 미술적 소질이 다분히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제 2의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창의력, 늦은 밤 시간까지의 작업을 위한 체력도 필요하다. 또한 고증을 위한 역사의 이해, 기존의 골격에서 다르게 보이게끔 변화시킬 수 있는 응용력, 이에 따른 해부학과 인상학, 화장품의 각 피부성질에 따른 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화학적 지식마저 필요하다. 과거에는 화장품이 없어서 직접 제조 한 후, 본인의 피부에 실험을 해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입도 많이 되고 국내 제작, 시판단계까지 와 있죠. 초기에는 왕십리의 소규모 화장품 공장에 가서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이런 스피리트 검(분장시 수염같은 종류를 얼굴에 붙이는데 쓰는 화장재료) 같은건 있지도 않았어요. 그저 한약방에서 송진을 사다가 식용 알코올을 섞어 만든 후에 용해된 송진을 끓여서 사용하면 그런대로 쓸만했죠 그 당시는 연기도중 수염이 떨어 진적도 많았죠. 수입 화장품들이 질이 좋긴 한데 물량 의존이 많아 조금 아쉽습니다.”
국립 극장이 명동에 위치한 당시부터 무대분장을 해온 최효성 씨. 한번은 무대 오르기 전, 주역급들이 늦게 나타난적이 있었다. 시간은 없고 분장은 빨리 시켜야 하니, 일렬로 주욱 세워놓고 -마치 자동차의 분업화 작업처럼-분장팀이 한꺼번에 덤벼,무대에 올린적도 있다며 지난날을 회고 했다.
분장은 작품규모 ,즉 출연자의 수에 따라 받는 가격 차이가 난다. TV방송국의 경우, 한달 동안 작업을 할 때. 경력에 따라 3십만원~2백만원 정도이며, CF의 경우 하루 작업시 15만원~5십만원 선이다.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대기, 1명의 분장 디자이너가 6명~7명을 분장해 준다. 경력이 많은 분장 디자이너의 경우 30명~40명의 수행 인원과 함께 50명~70명 출연시 백만원, 3백명 출연시 1천만원 정도를 받는다.
재료비나 인건비가 많이 드는데 비해 분장비는 십년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한다. 무대 분장은 하루 일당이 1만원 꼴인데, 아직 협회조차 없는 실정이다.
민간단체는 선계약 후지불이 서로의 요구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히려 국․공립단체는 기본 예산 책정이 적다. 결국 대규모 오페라라도 비용을 줄여야 하니 질 낮은 작품이 되기 쉬운 것이 당연하다. 또한, 분장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이 달라 주역급들은 아예 개별 약속을 미리 해 놔야 시간내에 잘 이루어진다.
분장실 수준을 구태여 비교한다면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은 괜찮으나, 예술의 전당은 분장실이 너무 작고 각 방의 위치가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어 비효율적이라고 분장 디자이너들은 말한다.
16년동안 1백여편 이상의 오페라 분장을 해온 구유진씨는 전예출씨의 수제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분장 디자이너이다.
“분장은 들러리가 아닌 전문 분야입니다. 아무리 다른 준비를 잘했다 해도 분장 하나가 빠지면 이미지가 살아날 수 없죠. 또한, 분장 디자이너라고 다 분장 디자이너가 아니겠죠. 제대로 배우고 아는 사람의 기용이 필요합니다. 저는 무용을 전공했고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분장을 받는 사람 느낌도 알고, 분장 디자이너로서의 느낌도 압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분장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분장을 꼭 하나의 직업으로서 확고히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예쁘게만 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지식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분장의 세계. 분장 디자이너란 손끝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마음까지 아름답게 가꿔야하는 ‘미의 마술사’이다. 글/박운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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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