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사람들 2001/8
콤플렉스 없애주는 마술사 구유진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의 시내를 한참 달려 북가좌동에 위치한 구유진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이라 해서 막연히 딱딱한 느낌의 높은 빌딩을 생각했으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들어서자 바쁜 스케줄로 분주한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팀원들이 트레이닝을 위한 분장 실습을 하고 있었고 구유진은 사무실 안쪽에서 곧 있을 무대 분장에 대하여 실습생과 상담하고 있었다. 진열대에는 각종 분장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아래로는 특수분장에 필요할 듯한 칼라 스프레이와 갖가지 뮤지컬 비디오 테이프가 가득했다. 그 테이프들은 그녀가 분장을 연구함에 있어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상담을 끝낸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환히 웃는 그녀의 볼에 살짝 비춰지는 보조개는 가녀린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답게 곱게 화장한 그녀의 얼굴에서 이제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프로로서의 자세가 보였다.
“키” 콤플렉스가 무용을 접게 해..
“어렸을 때부터 리듬감이 좋았다고 해요. 음악이 들리면 그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일쑤였죠. 그런 저를 본 어머님이 무용에 소질이 있겠구나 싶어 집 앞의 무용학원에 보내셨어요. 그때가 바로 7살 때에요. 제가 다닌 학원은 민속무용학원이었어요. 그래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게 되었죠. 처음엔 발레를 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발레를 정통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구유진은 7살에 무용을 시작하여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였다. 흔히 어려서부터 무용을 하고 예술고등학교와 대학의 무용과를 졸업했다고 하면 순탄한 무용인생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의 무용인생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어렸을 땐 몰랐어요. 그런데 선화예고 시절 크지 않는 키 때문에 신체적인 조건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 당시 대학을 들어가거나 무용단에 들어가려면 키가 최소 160cm가 넘어야 한다는 말이 많았죠. 작은 키 때문에 위축되기 시작했어요. 고3때, 무용은 내 길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리곤 무용과 입시 시험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죠.”
무용이 아니라면 체육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입시 막바지에 무용과에서 체육과로 전공을 바꾸어 대학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도 그녀의 길은 아닌 듯 했다.
“실기시험을 이틀 앞두고 무릎을 다쳤어요. 간신히 시험을 봤고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죠. 첫 좌절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원하는 일은 다했었기에 많이 힘들었죠. 부모님과 친구들이 무용과로 다시 재수를 하라고 권유했어요.” 끝내 구유진은 다시 무용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버릴 수 없었던 것이 또 무용이기에 부모님과 친구들의 설득에 재수를 하였고 연습을 1년동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시험만 보는 경희대에 지원하였고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생 구유진은 무용 그 자체에 대해 갈등이 많았다. 열심히 했지만, 후배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고, 공연 때는 키로 대열의 순서를 정하다보니 다시 위축되기 시작했고, 성격은 내성적으로 바뀌었다. 그때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보고자 ‘경희극장’이라는 연극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 분장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결국 연극무대를 위해 스텝이 된 구유진에게 선배가 건네준 한 권의 분장서적이 그녀를 분장의 세계로 이끌었으며 지금의 그녀의 모습을 있게 한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밝혀준 분장의 길, 버릴 수 없는 무용
“책 한 권으로 독학을 했지만 분장 그 자체에 흥미가 느껴졌어요. 전 특수분장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 때만해도 메이크업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죠. 방송국에 있는 형부의 소개로 KBS의 전예출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서 배우게 되었어요.”
그토록 갈등하던 구유진의 길은 아마도 분장이었나 보다. 그녀의 분장과의 인연이 한국 분장계의 1호인 전예출선생과 이어졌으니 말이다. 더욱이 전에출선생님의 다른 제자들은 방송국으로 진출하고자 했기에 구유진에게는 무대분장을 선생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이렇게 시작한 무대분장의 길, 그녀는 15년째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무용과를 다니면서 분장을 배우고 무대분장 일을 겸했던 구유진의 학교생활에는 많은 고충이 따랐다고 한다. 사실 무용과를 다닌다는 것은 많은 공연과 연습으로 개인적인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 만큼 많은 시간을 무용실에서 보내기 마련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학교 생활과 하고싶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로 인해 교수님의 개인 공연에 참여할 수 없음과 당시만해도 분장사에 대한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은 그녀에게 아픔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학교를 벗어난 구유진에게는 또 다른 무용의 길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어린이 뮤지컬 안무였다. <톰소여의 모험>을 시작으로<피노키오>,<보물섬>,<이상한 나라 앨리스>,<장화신은 고양이>등등 많은 작품을 안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무와 분장을 겸하는데도 한계는 있었다. 안무자는 객석에서 작품을 보아야하고 분장사는 무대 뒤에서 시시때때로 배우들의 분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욕심도 나지만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녀는 안무를 포기하고 분장의 길로 매진했다.
웬만한 콤플렉스는 분장으로 커버돼.
“사실 처음에는 무용분장을 하지 않았어요.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처음에 무용분장을 할 때는 모든 고객들이 선생님이고 선배이고 후배였죠. 많은 사람들을 알다보니 자유롭게 일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공연예술의 분장을 주로 했어요. 그러나 전예출선생님은 제게 ‘한 가지만 하면 절름발이이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방송과 같은 영상으로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분장과 무대분장을 겸해서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95년부터는 무대분장을 주로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녀도 무용인들도 이런 이유로 서오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구유진이 1996년 분장퍼포먼스 스타일로 개인발표회를 가짐으로서 매스컴을 통한 공신력을 얻게 되자 유명한 여러 프로무용단체에 초빙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구유진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의 전속 분장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한국 최고의 발레단이 그녀의 메이크업으로 표현되다 보니 어느 때부터는 콩쿠르장에서 구유진의 메이크업 기법을 많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구유진은 발레리나의 분장을 자신의 스타일로 패턴화시킨 것 같아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키 콤플렉스 때문에 무용을 포기하고 분장사의 길로 들어선 구유진은 키를 제외한 어지간한 콤플렉스는 분장으로 해결해주는 분장 마술사가 되었으니 세상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김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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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