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학보 2001/11/12
손끝으로 꾸며내는 예술
<피가로의 결혼> 리허설을 위한 분장으로 한창 바쁜 오후 5시. 해질녘 붉은 노을 같은 조명 불빛을 배경으로 얼굴이라는 도화지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첫인사를 대신하는 그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체적인 이미지가 그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배우들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 6시. 리허설을 위해 배우들이 모두 무대로 오르자 갑자기 조용해진 분장실에서 그녀와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분장사로서의 그녀 인생은 집안환경이 이끈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아버님께서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집에 항상 굴러다니던 화장품들. 게다가 7살 때 무용을 시작하면서 무대분장을 하곤 했던 그녀는 분장을 한 채 동네거리를 돌아다녀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무용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으로 우리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하게 된 그녀는 학기 초 신입생들 유치를 위해 길거리를 배회하는 ‘경희극장’동아리 회원들을 보게 되었다. 보통 무용하는 사람들이 연기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터라 평소 내성적인 성격변화와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으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아리 활동과 무용 연습이 계속 중복되어 연기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어린 시절 친숙한 경험으로 만만하게 본 무대분장 일을 해보겠다고 제안한 그녀. 여기서 그녀의 분장 일은 시작된다.
<안티고네> 공연을 무대에 올린 봄 대동제 때 처음으로 혼자 분장을 맡게 된 그녀는 공연 후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 분장에 관해 확실히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방송국에 다니던 형부의 소개로 만난 분장계의 대부 故전예출씨. 그 분이 바로 오늘의 그녀를 만든 주역이다.
연극, 오페라를 할 때 전씨 밑에서 같이 작업하며 배우기를 계속, 졸업 후 선생님의 권유로 그녀는 분장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게 되었다. 공연이 없는 여름, 겨울 비수기에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등지에가서 특수분장, 제작하는 것을 주로 배우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진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94년 ‘painting'이라는 분장기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또한 9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한 무대분장 퍼포먼스 ’구유진의 분장 이야기‘를 공연하며, 데드 마사크를 시도함으로써 다수의 방송에 출연한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지난 99년에는 제5회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극단 신시<라이프>분장으로 기술상을 타기도 한 그녀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 50~60세가 되면 시상내용으로 ‘올해의 분장상’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처럼 성공의 길을 걸어온 그녀지만 항상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87년 결혼 이후 그녀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경험들이 찾아들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 후엔 일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극단에서는 점점 다른 사람을 채용하고, 전선생님께서도 일을 줄여주시고..., 그것이 무척 스트레스를 받게 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도 작업이 없는 시간에는 출강을 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나가기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추계예술대학 성악과, 세종대대학원 뮤지컬반, 안성대 무용과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녀. 식지 않는 열정으로 드라마 분석 공부를 더 해보고자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연극영화과에서 남는 시간을 학업에 바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가지 바람을 살짝 귀뜸해주었다. “특수분장, 무대분장이 뷰티 메이크업까지 통틀어 ‘make up'이라는 용어를 남발해 사용하는 현실에 있어, make up에 대한 용어를 정리하고 그 동안의 활동으로 모아둔 자료들을 국회 도서관에 기증하여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으면 해요”라고,
그녀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려진 수많은 결과물들이 인생의 필름이 되어 돌아가는현장. 그 분장실의 모습은 앞으로 뮤지컬, 무용, 오페라 등 어떤 작품을 만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예술로서 기억될 것이다.
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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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