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 2002/5
무대 예술의 화룡점정을 위하여
분장 디자이너 구유진
촉망받은 무용계의 재원인 구유진이 분장을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물어보았다. “왜 무용가의 길을 버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장을 하려고 하나요?” 분장작업을 하면서 얄팍하기만 한 분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야 했고 당시엔 단 한 명의 여자도 없었던 분장계의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했다. 지금은 오페라, 발레, 연극, 뮤지컬 등 전 예술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그녀의 예술적인 감각과 엄청난 노력, 여자로서 최고가 되겠다는 멋진 오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기 작업에 대한 소신으로 뭉친 예술가와의 만남은 봄날의 향기로운 바람만큼이나 기분 좋은 시간을 선사했다.
인생의 전환은 우연히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무용을 시작해 당연히 무용가가 되리라 생각했던 구유진은 막상 대학에 진학하면서 벽에 부딪쳤다. 자신의 키가 작다는 사실이 무용가로서의 꿈을 접게 만들었던 것.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려 들어갔던 연극반에서 분장을 접하면서 매력을 느꼈다. 이미 위로 네 명의 언니들이 모두 화가인 집안이었기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대상이 화판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라는 차이는 있었지만. 당시엔 분장 교육기관이 없었기에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최고가 되기 위해선 최고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 하에 분장계의 거장이자 우리나라 방송분장 1호인 고 전예출 선생님을 찾아갔다. 밤새는 경우가 다반사요,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녀야 하고 ‘여자들은 기껏 키워놓으면 결혼하고 활동을 안 한다’며 스승은 구구절절한 이유를 들며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칼날을 갈아놓은 그녀가 쉽게 물러설 리 없었다. 삼고초려 끝에 그녀는 제자가 될 수 있었다.
1995년 독립하기 전까지 15년 간, 한국에선 최고로 꼽히는 스승에게 배우면서도 그녀는자신을 갈고 닦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름과 겨울에는 일본, 독일, 미국 등에 나가서 최신 분장 동향과 기법을 익히고 돌아왔고 스태프들도 무대전반에 걸쳐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 꾸준히 관련 공부를 해나갔다. 지나가다 분장에 관한 전공서적이나 책, 잡지, 비디오가 눈에 띄면 무조건 사들였으며 최근엔 작품 분석을 공부했다. 덕분에 1995년 스승으로부터 독립하고서도 각 분야의 예술가로부터 인정받는 분장 디자이너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1996년에는 독보적인 분야로서의 분장을 널리 알리고 분장의 역할과 매력을 제대로 전하고자 ‘구유진의 분장이야기’라는 분장 쇼를 개최,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구유진은 작은 분장이라고 해서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연보다도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분장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주연들은 대사가 많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심플한 분장을 하게 되지만 코러스들은 무대에 서있으면서 그림이나 배경이 돼야 하기에 이들이 분장을 더 신경써서 화려하게 작업한다. 작품의 완성도는 보이지 않는 작은 곳에서 비롯된다는 소중한 진리를 그녀는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최고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입니다. 저는 항상 최고가되고자 하는 자세로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제 해외로도 활동의 영역을 넓혀 올 7~8월에는 이태리에서 열리는 세계오페라 축제에 우리나라 오페라단과 참가할 예정이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S.F MAKE UP 팀이 외국의 분장 팀과 실력을 겨뤄볼 수 있는 기회다. 국내에서 인정받은 실력이 세계에서도 만발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
글 윤진영 / 사진 박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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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